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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츠키의 이력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합창단원, 밴드 멤버, 그리고 이상 헌터를 거쳐, 지금은 '성실한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 비취 거리의 점주들과 단골들은 늘 그녀의 화려한 이력을 두고 수군거린다. 어린 나이에 비해 인생의 밀도가 너무 높다나?
다소 요란해 보일 법한 이력이지만, 우미츠키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본업에 소홀한 적이 없다. 현재 비취 거리 주민 협회의 관리인으로 일하는 그녀는 어르신부터 어린아이, 가게 주인부터 뜨내기 손님까지 모든 이의 이름과 취향을 낱낱이 꿰고 있다. 곤란에 처한 이를 발견하면 앞장서서 팔을 걷어붙이는 남다른 직업 정신은 늘 주민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대체 시청에서 월급을 얼마나 주길래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걸까?"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도 허점은 있다. 바로 심각한 길치라는 것. 종종 홀로 거리를 배회하는 우미츠키를 발견한다면 주저 말고 길을 알려주자.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할 것이다. 물론, 아주 가끔은 정말로 일 때문에 그럴 때도 있다. 정작 말을 걸면 또 길을 잃었다며 얼버무리곤 하지만,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거짓말임을 금방 눈치챈다. 우미츠키는 비취 거리의 모두와 가깝게 지내지만, 그 누구에게도 「베스트 프렌드」의 자리는 허락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되 명확한 선을 긋는 그녀, 마치 책들이 수북이 쌓인 도서관의 빈자리처럼, 누군가가… 어쩌면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듯 말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비밀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지만, 우미츠키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 없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털어놓고 싶어도 삼켜야만 했던 이야기들. 우미츠키의 이러한 속사정은 그녀의 곁에 오래 머물러야만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우미츠키는 씩씩하게 해파리에 올라타 마주치는 모든 이에게 환한 미소를 건넨다. 이것이 그녀가 선택한 삶이자, 비취 거리의 주민으로 살아가는 그녀만의 방식이다.
아무도 모르는 노래
우미츠키는 소위 말하는 '이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서로를 사랑하는 부모님, 화목한 가정. 부모님의 간절한 염원과 사랑 속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님의 소중한 공주님이자, 가장 빛나는 작은 달님이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부모님이 너무나도 바쁘시다는 것. 그녀가 자랄수록 부모님의 사회적 지위는 높아졌고, 비례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철이 일찍 든 우미츠키는 부모님이 자신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하기 위해 애쓰고 계심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리광을 부리거나 떼를 쓰는 법이 없었다.
다만, 가끔 길에서 부모님의 손을 양옆에 잡고 걷는 또래들을 마주칠 때면, 어린 우미츠키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 뒷모습을 쫓곤 했다. 물론 그녀는 이런 고민조차 사치라는 걸 잘 알았다. 먹고 입는 걱정 없이 원하는 장난감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고, 반찬 투정을 하거나 밤을 새워 놀아도 꾸지람 한 번 듣지 않았다. 이만하면 충분히 행복한 게 아닐까? 엄격하거나 무관심한 부모를 둔 친구들에 비하면 과분할 만큼 행복하니, 더 이상의 욕심은 금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우미츠키는 찰나의 부러움을 뒤로한 채 시선을 거두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채 알기도 전에, 우미츠키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다스리는 법을 깨우쳤다.
혼자 노는 것에는 도가 텄지만, 그래도 생일만큼은 조금 특별하기를 바랐다. 알록달록한 선물 상자, 커다란 곰 인형, 그리고 혼자서는 도저히 다 먹을 수 없는 거대한 3단 케이크. 완벽한 세팅을 마친 부모님은 다시 직장으로 향했고, 우미츠키는 들뜬 마음으로 부모님을 기다렸다. 해가 저물고, 달이 지붕 위로 솟아오를 때까지… 시곗바늘이 한 칸씩 나아갈 때마다 그녀의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졌다.
결국 기다리기를 포기한 우미츠키는 녹아내리는 크림 사이로 위태롭게 서 있는 초에 불을 붙이고, 스스로를 위해 나직이 생일 노래를 부른 뒤 촛불을 불었다.
"이루어지지도 않을 소원을 뭐하러 빌어?" 투덜대기도 했지만 마음속 간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 번만,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엄마, 아빠랑 같이 생일을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첫 번째 화음
아카네, 스즈하와 친구가 된 건 어느 봄 소풍날이었다. 수족관에서 해파리를 넋 놓고 바라보다 반 친구들을 놓쳐버린 우미츠키, 잔뜩 겁에 질려 있던 그녀의 시야에 옆 반 친구인 아카네와 스즈하가 다가왔다. 세 아이는 그렇게 서로의 손을 꼭 맞잡은 채 집합 장소로 향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아카네와 스즈하는 우미츠키의 양옆에 앉아, 너무 운 탓에 눈가와 코끝이 빨갛게 부어오른 우미츠키를 달래주었다.
아이들의 우정은 항상 이렇게 단순하다. 그 난처하고 창피했던 해 질 녘을 기점으로, 세 명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우미츠키는 셋 모두 초중고 과정이 이어지는 클레멘트 아카데미에 다닌다는 사실을 늘 다행으로 여겼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진학 문제로 헤어질 걱정은 없었으니까.
이듬해 생일, 우미츠키네 집은 더 이상 썰렁하지 않았다. 거실 한복판에 산처럼 쌓인 선물 더미를 본 두 친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범한 아이들에게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이었다.
「얘들아, 거기서 뭐 해?」 우미츠키의 목소리에 아카네는 반사적으로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등 뒤로 숨겼지만, 이내 눈썰미 좋은 우미츠키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거 혹시 내 선물이야? 내 선물 맞지!」 우미츠키가 달려들어 선물을 잡으려 했다.
「저기 좋은 선물이 많잖아! 내, 내건 너무 보잘것없어서…」
「그거랑 이건 다르지!」 우미츠키는 낚아채듯 선물을 받아 들고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다. 「이건 내가 처음으로 '친구'한테서 받은 생일 선물이야! 나한테 줬으니까 이제 내 거야. 하핫, 아무리 아카네라도 절대 못 돌려줘!」
「정말 별거 아닌데…」 아카네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아카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미츠키는 거침없이 포장지를 뜯었다. 손바닥만 한 상자 안에서 반짝이는 작은 배지 몇 개가 굴러 나왔다. 그것은 세 아이가 처음 만났던 수족관의 기념품이었다. 울상을 짓고 있는 아기 해파리 마스코트가 어쩐지 그날 펑펑 울던 우미츠키와 꼭 닮아 보였다. 매일 수족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스탬프 북을 꽉 채워야만 받을 수 있는 소중한 비매품이었다.
우미츠키는 탁자 위에서 빛나는 배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아카네는 스즈하를 끌어당기며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발을 떼기도 전에 우미츠키가 두 친구를 와락 끌어안았다. 울보 소녀는 해파리 마스코트처럼 얼굴을 찡그린 채 다시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 와중에도 애써 말을 이어갔다. 「너무 좋아… 이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선물이야!」
그해 생일에도 부모님은 곁에 없었지만, 우미츠키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스즈하가 촛불을 밝히고, 아카네는 종이로 접은 고깔모자를 우미츠키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그날 함께 부른 생일 축하 노래는 우미츠키의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답고 감미로운 선율로 남았다.
촛불을 분 우미츠키는 또 다시 소원을 빌었다. '이 아이들과 평생 함께하게 해주세요.'
처음으로 어긋난 음
우미츠키가 이능력을 각성한 건 14살 때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났는지는 본인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펜 잉크가 나오지 않아 무심코 손을 휘둘렀을 뿐이었는데, 그 손짓 한 번에 갑자기 투명한 해파리 떼가 나타나더니, 비눗방울처럼 둥실둥실 교실을 떠다녔다. 당황한 선생님은 어디까지 강의했는지 잊었고, 아이들은 수업 중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우미츠키 옆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우미츠키,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다만, 가장 어리둥절한 사람은 우미츠키 본인이었다. 「그냥… 이렇게?」
그녀가 다시 한번 손을 휘두르자, 해파리들이 지휘자의 손길을 따르는 음표처럼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아이들 사이에서 경이로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미츠키! 너 설마… 그거…」
「이능력이다! 너 이능력자가 된 거야!」
일련의 검사를 마치고 우미츠키는 이능력자로 판정받았다. 처음엔 관리국에 신분 등록을 한 것 외에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능력을 얻기 위해 지불한 '대가'를 깨달은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우미츠키는 나고 자란 고향에서조차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매일 오가던 등하굣길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눈에 익은 가게들이 즐비했지만, 어느 골목에서 꺾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우미츠키는 어디를 가든 미리 경로를 상세히 적어두거나, 지도 앱을 확인하느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에 친구들은 이능력자가 된 우미츠키를 부러워했지만, 곧 그녀의 능력이 너무나 평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파리를 조종하는 능력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친구들의 관심은 시들해졌고, 사람들의 시선은 오히려 심각한 길치가 된 우미츠키의 위태로운 일상으로 쏠렸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챙겨주지만, 문제는 등굣길이었다. 길잡이가 되어주던 가게 간판이 바뀌거나 도로 공사로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길을 묻고 물어 수업종이 울릴 때야 겨우 교실로 뛰어 들어오기 일쑤였다. 하굣길 역시 미로 속에 갇힌 듯 헤매느라 늘 밤늦게야 귀가하곤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아카네와 스즈하는 결국 매일 우미츠키의 전담 길잡이가 되어주기로 했다.
「너희한테 계속 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미안해…」 풀이 죽은 우미츠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발끝으로 돌멩이를 툭 찼다. 스즈하는 그런 우미츠키의 손을 꼬옥 맞잡으며 이번에 좌회전해야 할 차례라고 다정히 일러주었다. 옆에서 걷던 아카네는 한숨을 내쉬며 우미츠키의 이마를 가볍게 톡 튕겼다. 「아야!」
「이능력자가 되었어도 넌 여전히 너야. 그리고 네가 우리한테 폐 끼친 게 어디 한두 번이야?」
스즈하가 웃음을 터뜨렸고, 우미츠키는 억울한 듯 볼을 잔뜩 부풀렸다. 「아카네! 너무해!」
「틀린 말은 아니잖아… 야, 가까이 오지 마, 저리 가!」
소녀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미츠키도 더는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고, 목청껏 웃으며 자신의 모든 감정을 얼굴에 드러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웃음 뒤로 작은 불안감이 마음속에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정말 예전과 같은 사람일까? 앞으로도 너희와 쭉 함께할 수 있을까?
이별 후 노래만 남아
우미츠키의 다리가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의사는 아직 희망을 버리긴 이르다며 위로를 덧붙였다. 의료 기술이 더 발달하거나, 치유 능력이 뛰어난 이능력자를 만난다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가능성이 단 1%라도 남아 있는 한, 우미츠키는 절대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재재활 훈련 틈틈이 우미츠키는 습관처럼 세 사람의 단톡방을 열어보았다. 오랫동안 새 메시지 하나 올라오지 않은 단톡방. 그녀는 글자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 이제 괜찮아, 걱정 마!」 「많이 놀랐지? 미안해 > <」 「오랜만이야! 우리 놀러 갈까?」 그 어떤 말도 지금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우미츠키는 마음을 굳혔다. 조금만 더 회복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직접 친구들을 찾아가 깜짝 놀라게 해주리라고. 입원해 있는 동안 쌓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전부 털어놓으리라고 말이다.
한동안 재활에 매달렸지만 다리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미츠키는 이제 「완치」만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능력 덕분에 일상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예전처럼 드럼을 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이 정도 시련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머지않아 아카네, 스즈하와 재회할 수 있을 테니까.
이때, 휴대폰에서 특별한 알림음이 울렸다. 아카네의 메시지에만 따로 설정해 둔 알림음이었다. 깜짝 놀란 우미츠키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채팅창을 확인한 그녀의 눈에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문자가 들어왔다. 「스즈하가 떠난대. 내가 문자를 받았을 땐 이미 차가 출발한 뒤였어…」
어?
머릿속이 하얘졌다. 떠난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수많은 의문이 가슴속을 가득 채웠지만 출구를 찾지 못했다.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려 해도 손이 떨려 글자를 제대로 입력할 수조차 없었다.
「스즈하가 어디로 가는데?」
스즈하는 이곳을 떠나 아카네도, 우미츠키도 없는 곳으로 향했다. 마음 여린 스즈하가 세 사람의 추억이 깃든 이곳에 계속 머물렀다간, 매 순간 상처를 헤집으며 고통을 되새길 게 뻔했다. 우미츠키는 그런 그녀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그럼 평행선은?」
이 질문의 답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설령 스즈하가 남는다 해도, 드러머 우미츠키가 빠진 밴드에 남은 선택지는 활동 중단이나 해체뿐이었다. 물론 새 드러머를 영입하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그런 제안은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평행선」은 우미츠키의 고집에서 탄생한, 오직 세 사람만을 위한 이름이었으니까. 새 멤버를 들인다고 해서 그 빈자리가 채워질 리 없었다. 「평행선」은 우미츠키의 고집에서 탄생한, 오직 세 사람을 위한 밴드였으니, 새 멤버를 영입한다고 해서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럼 너는?」
오랜 망설임 끝에 겨우 네 글자를 보냈다.
채팅창 위로 「상대방이 메시지를 입력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한참 동안 깜빡였다. 평소 털털하고 거침없던 아카네마저 머뭇거리고 있었다.
무시당할까 봐, 혹은 동정받을까 봐 겁내지 않았더라면. 좀 더 자신 있게 친구들을 마주했더라면.
기나긴 침묵 끝에 마침내 화면에 새 문자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겠어, 미안해.」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무력감 섞인 눈물이 눈가에 맺혀 화면 속 글자들을 흐릿하게 굴절시켰다.
왜?
해체는 절대 안 돼.
우리 영원히 함께하기로 했잖아.
아카네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니까 계속 무대에 서야지.
하고 싶은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제 그럴 자격도 입장도 아니었다. 「평행선」이 막다른 길에 내몰린 것도, 스즈하가 고향을 등진 것도, 아카네가 무대를 잃은 것도… 자신의 탓이었기에 우미츠키는 더욱 괴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마음만큼은 전하고 싶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일지라도, 무엇 하나 바꿀 수 없을지라도, 이제는 무대 위가 아닌 객석에 앉아 지켜볼 수밖에 없을지라도, 더는 함께 무대에 서지 못할지라도, 난…
「나는 아카네의 음악이 좋아. 그러니 부탁이야.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꼭 다시 무대에 서줘.」
「약속할게. 다음 무대에서 널 기다릴게.」
지난날의 잔향
무대에도 설 수 없고, 이상 의뢰도 맡을 수 없게 된 우미츠키. 무료한 일상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루한 재활 훈련뿐이었다. 자신을 앞으로 이끌어주던 팽팽한 줄이 툭 끊어진 지금, 그녀는 마치 방향을 잃은 채 무의미하게 표류하는 조난선과 같았다.
한때 우미츠키는 수많은 미래를 꿈꿨다. 그녀가 그렸던 「평행선」은 이상을 가장 잘 처리하는 밴드이자, 악기를 가장 잘 다루는 이상 헌터 조직이었다. 상상 속에서 그녀는 이미 수차례의 월드 투어를 마친 상태였다. 뭐, 상상은 자유니까.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공상은 빛바랜 사진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입원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우미츠키는 종종 같은 병실의 할머니를 도와 서류를처리를 거들었다. 그러다 먼저 퇴원하게 된 할머니가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얘야, 퇴원하고 계속해서 우리 일을 도와주지 않겠니?」
…뭐,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갈 곳도 없으니까.
지나간 과거와 작별하듯, 우미츠키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StarSign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비취 거리에서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활기 넘치는 이 거리에는 매일 수많은 사람이 오갔다. 그들 중에는 우미츠키가 한때 「평행선」의 멤버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있었지만, 지금의 우미츠키에게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싹싹하고 털털한 그녀를 좋아했고, 아이들에게 해파리를 타고 누비는 우미츠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느덧 그녀는 비취 거리에서 가장 환대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알찬 하루하루가 이어지며, 무대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은 꿈처럼 아득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을 단단히 먹은 우미츠키는 퇴근길에 일부러 발걸음을 돌려 StarSign을 찾아갔다. 하지만 예전에 신나서 뛰어 내려가곤 했던 그 계단 앞에 섰을 때, 그녀는 다시금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탄 해파리의 덩치가 너무 커서, 이 좁고 긴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었다.
과거로 통하는 문이 닫혀버린 이상, 미련이 남았다 한들 뭘 어쩌겠는가. 그때 차마 내뱉지 못한 말, 그리고 억지로 삼켰던 눈물은 결국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어야만 했다.
정말 그리웠다. 스즈하의 미소, 아카네의 노래… 하지만 이런 마음을 입 밖으로 냈다간, 소박한 바람이 저주로 뒤틀려버릴 것만 같아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다.
대신 앞으로 매번 열리는 「달빛 개의 밤」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세상의 모든 노래와 꿈을 품을 수 있는 그 드넓은 이상 공간이라면, 해파리 한 마리쯤은 거뜬히 수용할 테니까. 이후로 우미츠키는 그곳에서 공연이 열린다 하면 곧장 라인업부터 샅샅이 훑어보았다. 비록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그녀는 항상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음악을 위해 태어난 그 소녀가, 언젠가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올 것이라고.